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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발레

최민영 지음. 위고 펴냄. 2018년 11월 25일 초판 1쇄.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이유는 새로운 경험보다는 반복되는 경험이 많아지기 때문이라는 이론이 있다(11쪽). 내려올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올라갈 수 있는 힘도 나오지 않는다(62쪽). 서양에서 5백 년 넘는 역사를 갖고 이탈리아, 프랑스, 러시아, 영국 등에서 각각의 색깔로 체계화돼 온 고전 무용이라 역시 간단치가 않다(102쪽). 어른들은 “속 한 번 안 썩이는 착한 아이”라고 했지만 나는 사실 우울했다. 그게 우울한 것인지도 모른 채 우울했다. 우울하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안 우울한 게 어떤 상태인지 몰랐다(108쪽). 나는 공회전을 멈추기로 했다. 퇴근 후나 휴일에도 눈만 뜨면 뉴스를 모니터링하는 강박적인 습관도 버렸다(..

한국단편문학선 2

김동리 황순원 오영수 손창섭 정한숙 이호철 장용학 서기원 박경리 강신재 선우휘 지음. 민음사 펴냄. 1999년 3월 1일 1판 1쇄. 2016년 11월 8일 1판 48쇄. ······아침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오고, 저녁 까치가 울면 초상이 나고······ 한다는 것도, 언제부터 전해 오는 말인지 누구 하나 알 턱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 까지가 유난히 까작거린 날엔 손님이 잦고, 저녁 까치가 꺼적거리면 초상이 잘 나는 것 같다고 그들은 은근히 믿고 있는 편이기도 했다. 그런 대로 까치는 아침저녁 울고 또 다른 때도 울었다(46쪽). -김동리, 배신자란, 남에게서 미움을 받기 때문에 못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외로워서 못 사는 거야(77쪽). -김동리, 바다를 사랑하고, 바다를 믿고, 바다에..

아무튼, 스릴러

이다혜 지음. 코난북스 펴냄. 2018년 3월 5일 초판 1쇄. 시드니 셀던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로맨스(치정) 스릴러에 능했고, 마이클 크라이튼은 새로운 과학기술을 이용한 과학 테크노 계열, 로빈 쿡은 메디컬 스릴러의 스타였다(23쪽). *1994년은 의 해이기도 했지만, 그 외에도 사건이 많은 해였다. 일단 기록적으로 무더웠던 해였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으로 여름 내내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해야 했는데, 교실에 에어컨은 당연히 없었고 선풍기가 두 대 있어, 선생님들이 더워서 수업 대신 자율학습을 하자고 한 여름이었다. 이해에는 이우혁의 이 출간됐고, 드라마 이 방영됐으며, 애니메이션 이 개봉했고, 박경리의 가 완간됐다. 엘지트윈스는 이른바 신바람 야구와 신인들(유지현, 김재현, 서용빈)의 대활약에 ..

아무튼, 기타

이기용 지음. 위고 펴냄. 2019년 10월 20일 초판 1쇄. 나중에 삼촌은 “거기서는 자존심이 있으면 안 돼. 취객들은 이유 없이 바나나 껍질을 얼굴에 던지기도 하고 욕설을 내뱉기도 해. 밤무대는 밤의 인간과 낮의 인간이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는 곳이야”라고 무표정하게 얘기하곤 했다(17쪽). 우리는 무대에서 많은 뮤지션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을 지지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41쪽).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을 날카롭게 가르는 그런 기타를 치고 싶었다(58쪽). 누군가 3분을 내서 내 음악을 듣고 그걸 기억했다가 다시 한 번 더 듣는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76쪽). 바람 많기로 유명한 제주에서도 김녕은 손꼽히게 바람이 센 곳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딸을 김..

아무튼, 순정만화

이마루 지음. 코난북스 펴냄. 2020년 2월 1일 초판 1쇄. 30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그 대사는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다(17쪽). 하필 15세 이상 관람가로 개봉해 고등학생인 나조차 여과 없이 봐 버린 강우석 감독의 . 영화에는 실미도에서 탈영한 두 병사가 간호사를 강간하는 장면이 있다.······중략······그 장면이 정말 트라우마가 됐다는 걸 나이를 먹고서 알았다. 얼마 전 식사 자리에서 이 장면 이야기를 꺼내니 그 자리에 있었던 여자 선배 후배 모두 “아, 진짜 싫어. 너무 끔찍하지” 하고 그 신을 기억한 반면, 남자 선배는 “그런 장면이 있었나?” 되물어 놀란 적이 있다(40쪽). ‘언젠가 결혼을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은 ‘한국에서 결혼은 안 하지 않을까?’에 가깝게 바뀌었다(8..

오름오름

박선정 지음. 미니멈 펴냄. 2018년 5월 18일 초판 1쇄. 당산봉의 본디 이름은 당오름으로, 당오름의 ‘당’은 신당을 의미한다. 옛날 당오름 산기슭에 뱀을 신으로 모시는 신당이 있었는데, 이 산을 사귀라 했고, 그 후 ‘사귀’가 ‘차귀’로 와전돼 신당 이름도 ‘차귀당’이라 하고, 오름도 ‘차귀오름’이라고 불렀는데, 당산봉은 당오름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138쪽). 산봉우리 분화구가 마치 달처럼 둥글게 보여 달랑쉬, 월랑봉이라 불렸고, 지금은 다랑쉬오름이라 부르는데 들을수록 참 예쁜 이름이다(166쪽). 다랑쉬로를 걷다 보면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팽나무 한 그루와 표지석만 덩그러니 남은 다랑쉬 마을터가 보인다. 제주 4·3 사건으로 잃어 버린 마을이 된 아픈 사연이 깃든 곳으로, 주변에 학살된 주민..

아무튼, 트위터

정유민 지음. 코난북스 펴냄. 2018년 8월 31일 초판 1쇄. 얼굴은 많지만 이름은 없는 세계. 그것이 내가 원한 천국이었다(43쪽). 휴대폰으로 트윗을 썼다. 씨발 방금 회사 화장실에 쥐 나왔어(45쪽). 온갖 이야기가 매일 격돌하는 트위터 세계는 현실보다 더 응축된 파이팅이 넘실대는 듯 보인다(63쪽). 별 공통점도 없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 ‘우리는 식구!’ 같은 구호를 외치게 하는 기이한 기업 문화가 끔찍했다(67쪽). 사람들은 나만 보면 아들 하나 더 낳으려다가 네가 나온 거 아니냐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묘하게 기분이 나빴지만 오빠를 대하는 부모님의 태도를 보면 그게 정말 사실인 것 같아서 반박하지 못했다(어린아이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다 정말).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오빠와 내가 다..

아무튼, 문구

김규림 지음. 위고 펴냄. 2019년 7월 25일 초판 1쇄. 2019년 8월 15일 초판 2쇄. ‘대륙의 실수’라 불릴 정도로 가성비 좋은 샤오미의 제품들이 많이 사랑받고 있는데, 볼펜이야말로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한다(45쪽). 돌이켜 보면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대부분 비효율적 시간들에 있다. 빨리 할 수 있는데도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한 것들(65쪽). 아무리 오래 쓴 만년필도 잠깐 안 쓰면 잉크가 굳어 버려 따뜻한 물에 씻어 녹여 줘야 한다(66쪽). 곧 과거가 될 물건들. 아니, 이미 과거가 되고도 남았을 물건들. 조만간 사라질 물건에 대한 애틋함 같은 게 갈수록 커진다(145쪽).

아무튼, 달리기

김상민 지음. 위고 펴냄. 2020년 9월 25일 초판 1쇄. 평범한 재즈카페 주인이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야구 중계를 보다가 문득 소설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다. 별다를 것 없이 평범한 날이었다(13쪽). 약간의 뻔뻔함은 도전하려는 마음을 지키는 방패가 되어 준다. 그리고 그 방패를 앞세워 슬금슬금 전진하다 보면 어느새 목표에 도달하게 마련이다. 조금 느리더라도 꾸준히 하면 언젠가는 닿는다(27쪽). 하트로 가득할 인스타그램을 생각하니 이미 마음 한구석이 뜨거워졌다(31쪽). 어떻게 나이 들길 바라는지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그때마다 나의 답은 한결같다. 살아온 결과로서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겸손한 어른이길 바란다.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이 오롯이 나의 능력 덕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들이 ..

<제주도 반할지도>와 <다시, 제주>와 <제주도 비밀코스 여행 최신(2015년) 개정판>

세 권 사이가 '개정판' 같은 끈으로 묶이지 않았음에도 같은 글귀와 사진이 거듭 쓰인 걸 뭔가 사정이 있으려니 하고 잘 헤아려 받아들이긴 어렵다. 여행 쪽 책을 쓰는 관습인 건가. 최상희·최민 지음. 해변에서랄랄라 펴냄. 2018년 9월 9일 초판 1쇄. 물이 고여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궷물오름 아래(30쪽). 봄이면 백서향 고운 향으로 뒤덮이는 청수곶자왈은 여름에는 반딧불 빛으로 휩싸인다. 6월 장마 무렵부터 7월 한여름 밤이면 수만 마리의 반딧불이 숲 가득 신비로운 오로라 같은 빛 무리를 짓는다(43쪽). 4월로 접어들 무렵, 제주에는 부슬부슬 비 내리는 궂은 날이 이어진다. 섬에서는 이를 ‘고사리 장마’라 부른다. 비가 그치고 나면 그 비를 맞고 무럭무럭 자라난 고사리를 따러 모두 숲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