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 피난 400

2014.10.31. 10:51 ㅡ 책

[독후]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장정일의 독서일기, 여덟 번째 장정일 지음. 마티 펴냄. 2010년 8월. 다음 글을 읽고 1~5번까지 답하시오. 1897년의 한가위.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옷에 댕기꼬리를 ( )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어른들은 해가 중천에서 좀 기울어질 무렵이래야, 차례를 치러야 했고 성묘를 해야 했고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다 보면 한나절은 넘는다. 이때부터 타작마당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들뜨기 시작하고―남정네 노인들보다 아낙들의 채비는 아무래도 더디어지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식구들 시중에 음식 간수를 끝내어도 제 자신의 치장이 남아 있었으니까. 이 바람에 고개가 무거운 벼이삭이 황금빛 물결..

싸이월드 피난 2020.06.26

2014.11.07. 10:25 ㅡ 손팻말

쌀쌀. 피켓. 새삼 깨달았습니다. 손팻말이 읽힌다는 거. 지게차 운전하시는 분. 지게차 탄 채로 다가오시더니. “이거(1인 시위) 하면 회사가 들어줘요?” 저는 “…….” 어색한 웃음만. ”몇 명이 해고됐어요?” “한 명이고 접니다.” “뭐 그런 x 같은 경우가 있어.” 해고 사태의 앞뒤를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손팻말 들고 선 노동자의 억울함을 느끼시고, 위로해 주신 거였겠죠. 나이 지긋한 또 다른 노동자 한 분도 “거기 만날 서 있네”라며 달래 주셨고요. 더불어 알았습니다. 손팻말밖에 ‘해볼’ 게 없다는 거. 제가 지금 달리 해볼 게 없다는 거. ‘해보다.’ 동사. ‘대들어 맞겨루거나 싸우다.’

싸이월드 피난 2020.06.26

2014.11.07. 10:44 ㅡ 이 뉴스를 어떻게

[독후]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 한학수 지음. 사회평론 펴냄. 2006년. 2010년 시월 십이일 미국 애틀란타 척수·두뇌 신경전문병원 셰퍼드센터가 생명공학기술업체 제론의 후원을 받아 가슴 아래 몸을 움직일 수 없는 환자에게 인간 배아 줄기세포 200만개를 주입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임상(臨床)! 인간 배아 줄기세포가 환자 병상 가까이에 다가섰다는 이 보도에 이튿날 한국 생명공학기술 관련업체 주식 거래가격까지 들썩였다. 어느 언론사는 ‘줄기세포로 난치병을 고치는 시대가 한 발자국 더 다가왔다’는 시론을 냈다. 성급하면 안 된다. 사람 얘기니까. 세상을 어지럽게 해서도 안 된다. 환자는 간절하니까. 특히! 그때 그곳은 복마전이었으니까. 박쥐구실로 혹세무민하고, 거짓말과 공작이 난무..

싸이월드 피난 2020.06.26

2015.01.06. 08:46 ㅡ 돌파

[독후] 노종면의 돌파 노종면 지음. 퍼플카우 펴냄. 2012년 11월. 해고. 종이봉투를 열기도 전에 회사의 ‘해고’ 통지가 밖으로 배어났다. 음. 설마에 당했다는 느낌에 앞서 회사가 이렇듯 막무가내일 수 있구나, 이렇게 황당할 수 있구나… 싶었다. 툭, 입 밖으로 튀어나가는 헛웃음을 붙들지 못했다. 2014년 8월 22일. 금요일. 오후 다섯 시 사십오 분쯤.이 내게 해고를 통보했다. 8월 24일, 일요일에 맞춰 해고하겠다고. “사무실 출입을 자제해 주세요. 짐 정리할 시간은 드리겠습니다. 노동조합(전국언론노조 전자신문 지부) 사무실엔 계속 출입하실 수 있습니다.” 8월 25일. 월요일. 오전 아홉 시 반쯤. 회사는 내게 짐 정리할 시간만 주려 했다. 빨리 나가 달라는 얘기. 1995년 4월 1일부터..

싸이월드 피난 2020.06.26

2015.01.28. 13:28 ㅡ 이명박 정권 "우측보행"

낱말 또는 세상 ㅡ 우측보행 우측보행. 우측(右側). 오른쪽. 북쪽을 향했을 때 동쪽과 같은 쪽. 보행(步行). 걸어 다님. 즉 오른쪽으로 걸어 다닌다는 뜻. 2009년 이명박 정권이 난데없이 “우측보행”을 외쳤습니다. 오른쪽 궁둥이나 왼쪽 볼기나일 텐데 그게 뭐 그리 대수롭다고 도시 여기저기에 ‘오른쪽으로 걸어 다니라’는 표지를 내걸었죠. 지금도 지하철역 같은 곳에서 쉬 발견할 수 있어요. 음. 시민의 걷는 방향까지 알려 줬으니 이명박 정권은 참으로 친절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허나 이건 좀 지나친 것 아닐까요. 못내 찌뿌드드합니다. ■오른쪽으로 걸으라고? 왜 또 이래라저래라! 표준국어대사전엔 ‘우측보행’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우측’과 ‘보행’이 따로따로 올라 있죠. ‘우측통행’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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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8. 18:48 ㅡ 박상윤 평전

[독후] 박상윤 평전: 맑고 아름다운 노동운동을 위하여 박상윤추모사업회 지음. 한스컨텐츠 펴냄. 2014년 12월. “제게 ‘하방’을 말씀하셨군요. 화두로 끌어안을 것 같습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나는 ‘하방’일 걸로 짐작해 내게 이 책을 건넨 이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 책 끝에 내게 도움이 될 게 있을 듯하다는 그의 예상을 어림쳐 헤아린 결과였다. 그는 “하방(下放)이란 중국에서 당 간부나 공무원의 관료화를 막기 위해 일정 기간 농촌이나 공장에 보내 노동에 종사하게 한 운동이죠. 물론 지금 그렇게 할(노동조합 상층 간부들의 하방) 수는 없겠죠(201쪽). 고통 받는 노동자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 같(202쪽)”다며 이 책을 매조지했다. “꼭 그런 건 아니”라는..

싸이월드 피난 2020.06.26

2015.03.25. 22:59 ㅡ 報

7개월 만에 받은 본래 상태 월급 ㅡ 부당 해고와 징계의 경제 고통 報 음. 3월 25일. 7개월 만에 월급을 제대로 받았습니다. 지난해 8월 24일이 저를 부당히 해고한 이래 처음으로 본래 상태의 월급을 받은 거예요. 감개무량했다거나 울분이 솟구치진 않았죠. 조금 원통해 짧은 탄식이 입 밖으로 흘렀을 뿐입니다. 은 부당 해고 이튿날(2014년 8월 25일) 제게 ‘근속 2년 치 퇴직금’과 해고 예고 수당 따위를 지급했어요. 근속 2년 치 퇴직금에 불과했던 건이 2011년 4월 26일 저를 ‘부장 대우’로 만들어 논설위원실로 보낼 때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에 따라 연봉제 사원으로 바뀌었다며 근속 16년 치 퇴직금을 지급했기 때문입니다. 제 뜻을 묻지 않은 채 밀어붙인의 중간 정산 관행이었죠. 그때 받은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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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31. 09:35 ㅡ 오월 31일

오월 31일. 나는. 오월 31일. 1989년. 이십육 년 전. 스물하나. 나는. 군대에 갔다. 국가가 정해 둔 27개월의 첫날. 나는. 미칠 듯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던 그 막막함… 캄캄함. 나는. 11개월 만에야 첫 휴가를 나왔다. 1990년 겨울(2월) 도상 훈련으로 대체하기 전에 치른 마지막 한미 ‘팀스피릿’ 전쟁 연습 뒤였다. 첫 휴가 전 11개월간. 나는. 전두환의 삼청교육대가 있던 곳에서 신병 훈련을 받았고. 1980년 오월 광주에 갔던 걸 자랑삼아 말하는 자의 무릎 관절을 그자가 잠 들 때까지 주물렀으며. 그자가 광주에서 썼던 ‘충정봉’을 들고 내가 다닌 학교를 가상한 소요 진압 훈련을 했고. 야전삽으로 불현듯 등을 맞아 한동안 숨을 틀 수 없을 때 ‘이대로 정신을 놓을 수도 있겠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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